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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문화예술

미야자와 켄지와 그의 작품세계

자연과 희생, 그리고 종교


미야자와 켄지’, 비교적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는 남들이 갖지 않았던 농민에 대한 연민과 그것을 확장시킨 그들에 대한 복지를 위해 힘썼다.

 

그는 농민의 삶을 알고 싶어 다니던 농학교를 퇴교하고 라스지인협회를 설립해 농업과학 연구와 농사지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스스로 농업활동을 벌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농업과학의 연구와 농업예술의 필요성 등을 알리며 농민들의 삶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작가이자 시인으로서 켄지는 고향인 이와테(岩手)현의 평온한 농토와 습지에서 기복이 심한 산 속까지 발길을 멈추지 않고 다니며 자연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농업에 대한 전언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는 다르게 오히려 그는 농민들에게 반감과 질투를 샀고, 그는 자신의 이상과는 배치되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의 현실세계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의 노력들은 그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독함과 외로움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후 그는 이러한 감정을 그대로 정신세계로 전이시켜 그만의 감성적인 세계관을 낳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애틋함과 감수성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는 이러한 삶을 통해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법한 역작을 쏟아낸다. 동화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은하철도의 밤>, <바람의 마타자부로오>, <주문이 많은 음식점>, 시는 <봄과 수라> 등이다.

 

이러한 켄지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키워드는 자연이다. 자연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서, 우리들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는 환경문제라는 시대적 과제를 떠올리게 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떠한 방식이 진정한 해결점인지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다.

 

그가 나오기 전까지 미야자와 켄지만큼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연을 그려낸 일본 현대 작가는 없었다. 그는 자연에 저항하는 태도를 그리는 방식이 아닌 자연을 관찰했고 자연에 동화되는 조화로움을 역설했다.

 

단편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서문에서 켄지는 자신을 자연 현상의 신비로움을 전달하는 일종의 매체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자연 그 자체를 재생하는 단순한 도구로서 인식했다.

 

또한, 그의 이야기에서는 사람과 동물, 식물, 바람, 구름 별, 태양 등의 삼라만상이 조화를 이뤄 교감을 하고 사랑을 나눈다. 삼라만상이 연관되어 있다고 여기는 세계관은 켄지 작품이 갖는 특색이다.

 

이렇게 켄지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자연물들과 생명체들의 자유로운 교감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교감은 읽는 이의 마음에 애틋한 감수성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두번째의 키워드로는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켄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은하철도의 밤><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의 내용은 모두 희생과 연관이 있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에서 주인공 구스코 부도리는 가뭄을 막는 방법을 연구하며, 조력발전소를 건설하고 비를 내리게 하는 등 농민에게 사랑과 헌신을 베풀며 세계를 이루는 자연물들과 외적, 내적 균형을 이루지만 느닷없이 위기가 찾아온 위기에 화산을 폭발시키며 조건없는 희생을 통해 숭고한 끝맺음을 이룬다.

 

<은하철도의 밤>에서도 역시 켄지는 자기희생의 숭고한 정신과 그 아름다움을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 온 우주를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로 확장해갔다. 그는 이러한 희생을 통해 농민을 향한 자신의 희생적인 노력과 사상을 아름답게, 또는 다소 슬프게 전하며 마무리 짓고 있다.

 

그의 세번째 키워드는 종교이다. 켄지는 모리오카(盛岡)고등농림학교에 재학중에 불교 일련종(日蓮宗; 니치렌종) 신앙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농민예술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종교와 자연과 과학이 융합된 독자적인 소재를 다루었고 일련종의 신앙에 기초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는 일련종에 매우 심취해 있었고 유언으로 <묘법연화경>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라고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굳이 '불교적'이라는 느낌의 내용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은하철도의 밤>'오후 수업', '인쇄소', '', '켄타우로스 축제의 밤', '천기륜 기둥', '은하정거장', '북십자성과 플라이오세 해안', '새를 잡는 사람', '조반니의 차표' 등의 9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북십자성과 플라이오세 해안'에서 켄지의 종교관이 잘 드러난다. 종교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제도적 종교를 초월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그는 "할렐루야, 할렐루야" 같은 표현으로 오히려 기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기도 하고 '용담화' 같은 불교적인 제재도 언급한다.

 

하지만 이렇게 나누어본 자연과 희생, 종교라는 세가지의 키워드는 그의 작품에서 개별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켄지는 산과 들을 거닐며 광물이나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소한 기상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러한 것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통해 자신에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여러 감정들이나 상념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상호작용을 기록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것을 켄지는 '심상 스케치'라고 불렀다.

 

당시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일본이 주변 아시아 국가에 대한 무차별적인 침략을 일삼고 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그는 '심상 스케치를 통해 살아있는 생물은 모두 한 형제이고, 그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개인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조화와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신과 다르거나 이질적 존재에 대한 차별과 편향을 갖지 않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소통을 꾀한다.

 

결국 켄지는 이러한 세가지 키워드을 통해 자연과의 교감에서 환희를 발견하고 이러한 환희를 통해 풍요로운 에너지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 더욱 나아가서는 이를 작품 저변에 깔려있는 종교적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의 전언은 이렇게 하나로 귀결되며 배타적이었던 일본 사회에 대한 질책과 다른 차원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