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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문화예술

"모든 비즈니스는 예술이다", 앤디 워홀



“비지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은 가장 환상적인 예술이다. 히피가 유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비즈니스의 개념을 격하했다.  그는 ‘돈은 더러운 것이다’ 또는 ‘일하는 것은 추하다’ 라고 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은 예술이고, 일 하는 것도 예술이며, 돈 잘버는 비즈니스가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의 생애


1928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슬로바키아(당시는 체코) 이민자의 가정으로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었고,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그 자신도 평생 교회를 다녔다.

 

육체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942년 앤디가 14세 때 사망 후 어머니 줄리아가 혼자 아들들을 키운다. 앤디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카네기 공과 대학(현재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상업 예술을 전공한다. 1949년졸업을 하면서 뉴욕 시로 이주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으로 명성을 쌓았다.

 

1962년 뉴욕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서 열린 ‘새로운 사실주의자들 New Realists’ 전시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워홀은 수프 깡통이나 코카콜라 병, 달러지폐, 유명인의 초상화 등을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으로 제작하였다. 그가 선택한 작품 주제는 대중잡지의 표지나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있는 것으로 워홀은 그것을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조수들과 함께 대량 생산하였다.

 

워홀은 1963년 첫 영화 《잠 Sleep》을 촬영하였다. 1965년에는 영화 만드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회화와의 작별을 선언하였다. 그는 총 28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1968년 팩토리 일원이자 그의 실험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던 발레리 솔라니스에 의해 저격당하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솔라니스는 후에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라고 회고하였다.

 

1970년대부터 사교계나 정치계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1972년 《마오 Mao》시리즈로 다시 회화 제작에 전념하였다. 1983년 장 미셸 바스키아와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하였다.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과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대놓고 돈밝히는 작가


앤디워홀은 팝아트의 아버지이자 현대 미술의 빠질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대놓고 돈을 밝히는 작가로 유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란 인간에게 빠질 수 없는 욕구이자 본능임이 분명하다. 어떤 예술작가도 주목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의 가치에 주목하는 그의 행보는 첫 작품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1962년에 ‘캠벨 수프 캔’이라는 작품을 탄생시킨 앤디워홀은 이 작품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한번에 받게되는 작가가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탄생 배경은 지극히 단순한 것. 어떤 사람이 ‘캠벨 수프 캔’같은 일반적인 작품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떠냐 하는 말 한마디가 이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는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기 보다 말그대로 상업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는 아예 자신의 스튜디오의 이름을 ‘팩토리’라고 짓고 ‘예술 노동자’를 고용해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찍어낸다.

 

‘팩토리’라는 말 그대로 그의 스튜디오는 예술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었던 셈이다. 상업예술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예 작품마저 상업적으로 대량생산하는 생각을 했던 앤디워홀.

 

그는 돈과 명성에 대해 집착하였고 그런 것들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그의 안티가 많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팝 아트는 코카콜라 같은 것이다. 돈을 더 낸다고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더 내면 수가 많아지지 내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같은 것을 마신다.

대통령이 마시는 콜라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마시는 콜라든, 길거리 건달이 마시는 콜라든 모두 같은 것이다. 평등하고 쉽다”

 

누구에게나 쉽고 평등한 예술을 추구했던 앤디워홀에게 예술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예술이었다.

 

워홀의 작품세계


워홀의 작품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여자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화려한 색채 같은 도판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마릴린 먼로나 앨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스타의 이미지와 상품, 달러 기호 등 미국 사회에 유포하는 경박한 기호를 작품화했다.

 

고전 예술과 모더니즘 등과는 달리 그 도안은 풍부한 미국 사회를 구현하는 명쾌한 팝아트, 상업 회화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거기에는미국의 자본주의와 ‘대중문화’가 가지는 대량소비가 아닌 인류, 진부, 공허함이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편성을 구한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이나 대중이 매일 접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와도 관련이 있으며, 또한 사고와 죽음의 이미지도 그려졌다.

 

그는 자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봐 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철저하게 “예술가의 내면”을 없애고 표면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유명한 것에 애정을 숨기지 않고, 스타와 정치인이나 사고, 패션 제품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으며, 그것이 유명하고 또 내 자신도 그것을 사랑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 자신이 미국의 유명인이 되고 나서도 걸음을 흩트리지 않고, 유명인을 연출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