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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는 문화예술

영화와 소설, 장발장과 레미제라블로 보는 죄의식


소설 '레 미제라블'을 말하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한국에 '장 발장'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당시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회상한다. “1861년 6월 30일 아침 8시 30분, 창문 너머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는 ‘레 미제라블’을 끝냈다네. 이제는 죽어도 좋아.” 젊은 시절부터 사회 고발 소설을 구상했던 위고는 1845년부터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가 16년 만에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탈고했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 집필 당시에는 제목이 ‘레 미제르’(Les Misères, 비참함)였지만, 나중에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주인공 이름 역시 원래는 ‘장 트레장’(Jean Trejean)이었지만, 나중에는 ‘장 발장’(Jean Valjean)으로 바뀌었다.

 

‘레 미제라블’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다. 축약이나 각색이 아닌 ‘무삭제판 레 미제라블’을 처음 접한 사람은 두 번 놀란다. 첫째로는 그 방대한 양에 놀라고, 둘째로는 그 유명한 줄거리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장 발장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도 3분의 1 가량에 불과하며, 나머지 3분의 2에서는 19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와 풍습, 그리고 다양한 문제에 관한 저자의 견해가 서술되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은 툭하면 곁길로 새는 소설이다. 저자는 종종 장 발장의 행적을 따라가다 말고 갖가지 여담을 늘어놓는다. 장 발장이 수녀원 담장을 뛰어넘자마자 수도원 제도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가 끼어들고, 장 발장이 하수도에 뛰어들자마자 파리 하수도의 역사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가 끼어드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 미제라블’이 걸작인 까닭은, 저자의 이런저런 여담을 걷어낸 핵심 줄거리가 매우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다른 위대한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레 미제라블’은 인간의 갖가지 전형을 그려낸다.

 

한때의 실수로 전과자가 되었다가 개과천선하지만 영원히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 장 발장,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집요하게 장 발장의 뒤를 쫓는 형사 자베르, 모두가 외면한 장 발장에게 자비를 베푼 밀리에르 주교, 가난과 학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소녀 코제트, 사랑과 우정에 온 몸을 바치는 열정적인 청년 마리우스, 어떤 상황에서든 이득을 추구하기에 혈안이 된 악당 테르디니에 등등.

 

물론 단점도 있다. 저자의 장광설은 물론이고 빈약한 심리 묘사 때문에라도, 이 소설은 결코 인류 최고의 걸작이라는 반열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발장의 기구하면서도 놀라운 일생은 발표 후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압도적인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레 미제라블’은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서사시와 소설, 그리고 에세이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며, 테오필 고티에의 말처럼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상황과 자연이 창조해낸 작품”이다. 그리고 랑송의 말처럼 “온갖 탈선과 삽화와 명상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가장 멋쩍은 수다 옆에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이런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 미제라블’이 처음 개봉했을 때, 전문가들의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심도 깊은 명작을 영화화 하기란 쉽지 않아 자칫하면 원작의 명성만 갉아먹는 졸작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엄밀히 말하자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바탕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레 미제라블’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소설의 굵직한 포인트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레 미제라블', '장 발장'을 통해 보는 죄의식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캐릭터이다. ‘죄, 용서, 참회, 구원, 아버지, 희생’ 등 다양한 인물상을 통해 그의 고뇌와 인간적 삶을 보여준다. 빵 한조각으로 19년의 감금 생활을 하며 비운의 삶을 살던 그에게 신부는 죄를 용서하고 ‘장 발장’에게 삶의 희망과 그의 죄를 씻는 참회를 선사한다. 이후 그의 삶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삶을 구원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판틴’을 만나 그녀의 타락과 슬픔을 느끼고 무기력함과 구원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에 따라 등장한 ‘코제트’. 그에게 ‘코제트’는 죄의식의 인생을 구원해줄 희망이자 판틴이 남기고 간 최후의 희망이다. 그리고 ‘마리우스’라는 청년과 이어짐을 통해 새로운 구원으로 이어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한편, ‘자벨경감’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감옥에 가야하며 그것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 원칙주의자이다.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분명한 정의일지도 모르나, 현실에서는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마지막에 ‘장 발장’을 통해 깨닫게 된다.

 

‘장 발장’은 많은 세월을 죄의식 속에서 살았다. 빵 한조각 때문에 19년 동안 자신의 죄에 대한 의문과 회의감.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떠돌았으며, 석방 된 이후로는 ‘자벨경감’의 정의론에 시달리며 자신의 희망을 지키고 자신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죄라는 것은 무엇인가?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죄와 벌 그리고 용서. 한번 쯤 생각해볼만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