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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픽

'알파고(AlphaGo)'와 인공지능 공포, 기계는 인간에게 도전한 적 없다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기술업계와 일반인들 모두의 전폭적인 관심을 받으며 보다 뜨거워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게임 중 하나라는 바둑에서 알파고는 2승을 거두었고, 남은 3차례의 대국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수 많은 언론사들은 연일 둘의 대결에 대한 기사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 중 가장 눈에 띄게 특징적인 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인간의 패배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것들은 마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띄며,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 하나,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터미네이터' 영상을 흘려보내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겨내며, 인간의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최대한으로 자극하고, 트래픽을 취득하고 있다. 


1. '알파고'의 직관과 통찰력?


둘의 대결이 성사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알파고가 극복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통찰력과 직관을 꼽았다. 기계에 불과한 알파고가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 이상 이세돌을 이기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것이 무참히 깨지면서, 마치 알파고가 스스로 인지력을 가지고 직관과 통찰을 발휘한 것처럼 여겨지고, 사람들은 곧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의 탄생을 경고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일반인조차 다 알고 있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구글만 모르고 알파고를 개발한 것일까?


인간의 직관이나 통찰력은 경험에 근거한다. 이세돌의 바둑에 관한 직관적 판단은 과거 수 많은 학습을 통해 형성된 지식을 토대로 형성이 되었으며, 이러한 직관이라는 것은 가장 정황상 옳은 수를 두거나, 의도한 바를 두도록 만든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며, 여기서 말한 직관은 통계적 개념에 근거한 방법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컴퓨터가 훨씬 더 유리한 직관력과 통찰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세돌이 수천년에 걸쳐 학습해야 하는 사항들을 알파고는 몇 달만에 학습해낼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최적의 수를 산출해내는 것을 '바둑에서의 직관'이라고 칭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진정한 AI의 '직관'이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며, 알파고가 충분히 '바둑에서의 직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알파고는 바둑을 아주 잘 둘 수 있고 비슷한 일들을 아주 잘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새로운 바둑의 룰을 합리적으로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진정한 의미의 통찰력과 직관을 발휘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2. '알파고'는 실수를 연발했다?


알파고는 수 많은 기보를 머신러닝을 활용해 학습해 DB를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최적의 확률을 가진 수를 둘 뿐이다. 알파고는 말 그대로 바둑을 두는 기계이며, 이것은 인간이 알파고를 이겨야 할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기계는 인간에게 도전하지 않는다. 기계에게는 그러한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두는 수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수' 혹은 '변칙', '과감한 수'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바둑을 두는 논리적 흐름에 따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알파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알파고는 프로 바둑기사들의 무수한 기보를 학습해 이를 바탕으로 가장 높은 확률의 수를 둘 뿐이며, 이것의 순서나 위치, 의도에 대한 사항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가장 높은 확률을 유추해낼 뿐이다. 


이것은 마치 '그림을 자동으로 그리는 프로그램'과 '화가'의 차이와 비슷하다. 화가는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인간의 인지 범위 내에서 얼굴의 형태를 먼저 그리고, 눈, 코, 입을 잇따라 그려낼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자동으로 그리는 프로그램에게는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수리부터 턱까지 동시에 순식간에 그려내면서 결국 얼굴을 그리는 목적만 달성할 뿐이다. 


3.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 때문에 개발해선 안된다?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개발해서는 안되며, 이를 걱정하고 공포스러워 하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이다. 물론,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고민거리라고 한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인류 전체의 발전을 놓고 보았을 때 매우 놀라운 발명품으로 인정 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기 때문에, 마부들이 직업을 잃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세계는 여전히 마차를 타야하고, 자동차는 마부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4.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개발해선 안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이라는 종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한편으로 인간의 무지함을 상징한다. 전세계에 있는 주방용 칼은 언제든지 흉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공지능을 훌륭한 도구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지능을 가질 가능성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 또다시 기술할 것이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의 많은 일들을 도울 것이며, 과거에 수백명이 처리할 일을 단 한 사람이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이 개발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또한 더욱 개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체처럼 알아서 몰래 인지력을 가지고 성장할 것처럼 여기는 공상영화의 추종자들에게는 떠들며 토론하기 좋은 주제이지만, 현실에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미 인간은 공상영화 추종자들이 말하는 인공지능보다 훨씬 끔찍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히로시마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들은 핵무기 사용을 자제해야 함을 깨닫고, 이를 더 이상 더욱 큰 규모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미국은 짜르봄바나 리틀보이를 능가하는 파괴적인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지만, 이를 만들어내지 않고 있다. 인간의 무지함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돌이킬 수 없는 멸종을 초래할 것이라는 상상은 인간이 핵무기를 언제 어디서나 풀어놓고 누구나 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상황과 똑같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처럼 무지하지 않고, 핵무기는 여전히 억제되고 있다. 또한, 그 정도 수준의 인공지능을 전세계 국가에서 누구나 보유할 수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5.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초지능'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다?


'초지능'이라는 개념은 침팬치와 인간의 지능의 격차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침팬치의 두뇌 연산속도가 100배 빨라져도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인간의 지능과 인지력은 침팬치의 지능과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지능'이라는 것이 등장해 인간을 대체하고 언젠가는 인간을 지배하거나 준하는 괴로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침팬치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인간의 발견과 발명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설사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이나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개념조차도 실제적으로 인간이 인식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인식 범위 내에서 규정하는 방법을 통해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인간을 능가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다고 하여도, 인간이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스스로 자가학습을 통해 발전한다고 해도 구조적으로 완전히 차원이 다른 비대칭적, 비정형적인 데이터를 생성해내거나 이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논리와 구조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며, 인지력을 지닌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보다 훨씬 치밀하고 빠른 연산, 뇌의 기억력과는 비교도 안되는 데이터베이스 등을 통해 수평적인 개념으로 월등한 것이지 수직적으로 월등할 수는 없는 것이다. 


6. '알파고'의 수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앞으로 이길 수 없다?


바둑TV의 김성룡 해설은 알파고의 예측 불가능한 수를 두고 '그 수가 실수가 아니라 계산된 것이라면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그 논리대로 따른다면 인간은 지금처럼 유구한 발전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란 단 한 번의 바둑 대국에서 패함에 영원히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 불가능에 대한 무수한 연구로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세돌과 김성룡 해설이 알파고의 수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 영원히 그것을 예측하거나 계산할 수 없다고 발언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의 이면에 개인의 유능함과 탁월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에는 무수한 인간들의 시행착오와 실패에 기반한 연구, 새로운 시도, 끈질긴 도전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늘 하루의 일이 인류의 미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